"세상의 왕."

  쉴 틈 없이 진행된 긴 대화 끝에 살짝 흐트러져 있던 호흡을 재빨리 가다듬은 뒤 기자가 말을 이었다. 

  "그 때 당신은 스스로를 가리켜 그렇게 일컬으며 세상을 향해 포효했지요. 어쩌면 이번의 성공에 대해서도 준비해두신 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글쎄요. 할 말이 없지야 않겠지만 이번에도 그 때처럼 무대 위로 불러내서 트로피를 잔뜩 줄 것 같지는 않군요. 어차피 그러길 바라고 만든 것도 아니고."

  언뜻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남자의 어조에는 잘난 척 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묻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한 때 왕이었던 자의 말이었다. 그저 사실의 담담한 토로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기자는 남자의 입가에 매달린 채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미소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 무엇 때문이었나요?"

  "돈이지요."  남자는 대수롭잖다는 투로 한 마디를 툭 던지고는 꼬았던 다리를 풀며 등받이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정확히는 돈을 끌어모을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내가 딱히 배금주의자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가진 힘과 중요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어쨌거나 다음에 할 일은, 돈을 꽤나 많이 잡아먹을 예정이거든."

  " 다음 일이라면…… 그겁니까?"

  한층 더 짙어진 미소와 함께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가볍게 주먹을 쥐어 심장 바로 위쪽일 법한 부근을 툭툭 두드려보였다.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묵직해 보이는 그 동작에 기자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가슴팍 쪽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멋보다는 활동성을 강조한 듯한 청바지에 짙은 빛깔의 반팔 티셔츠. 그 앞쪽에 검은 머리칼을 지닌 소녀의 모습이 흑백의 색조로 인쇄되어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어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는 복장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라기보다는 잘 단련된 근육 속에 깃든 야성적인 힘을 드러내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팽팽히 당겨진 활처럼, 고요함 속에서 비축해 두었던 힘을 어느 한 순간 폭발시켜 맹렬히 앞으로 쏘아져 나갈 것 같은 느낌. 불안한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단 한 번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현실의 인간과는 거리가 먼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이었음에도 기자는 어렵지 않게 소녀의 눈에 담겨 있는 강한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두 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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