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RICT 9 - 몇 가지 잡담 TRAVELS

※ 스포일링 포함 구역 ※

-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하는 도입부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비추는 순박하고 약간 소심해보이는 남자가 알고보니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에 '어?' 하고 자못 놀란 사람, 나 혼자 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해서 블록 처리.

-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교훈은 '뭐에 쓰는 물건인지 잘 모르겠으면 함부로 건드리지 말자' (……)

- 개인적으로는 왜 하필 고양이먹이였을까 하는 부분이 가장 큰 의문. 혹시 타우린 때문에? 만일 그렇다면 우주선이 대한민국 상공에 정박했을 경우 캣푸드 대신 박X스 같은 것들이 비싸게 팔려나갔을지도.

- Prawn들은 과연 곤충처럼 외골격인 걸까? 아니면 단지 피부가 경질화되어 있을 뿐인 걸까? 왜 난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걸 궁금해하고 있는 것일까?

- 파워드 슈츠의 총알 모았다 돌려주기와 돼지 날리기를 보면서 하프라이프 2를 떠올린 사람 또한 나 혼자 뿐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 "여긴 내가 맡을 테니 어서 가!!" 따위의 대사를 내뱉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걸 보면 과연 주인공 보정이란 대단하긴 대단한 특권인 듯.

- 이 나라에서 2010년 월드컵이 열린단 말이지? 흠……

- '크리스토퍼 존슨'이 약속한 3년 뒤의 이야기를 다시금 스크린을 통해 보고 싶은 바람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것과 거의 비슷한, 아니 조금 더 큰 비중으로 이 영화의 뒷이야기는 차라리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내가 있다. 일필휘지의 명작에 더해진 보기 흉한 가필이 될 것만 같다는 우려에서랄까. 물론, 감독의 차기작은 기대되는 바이다.


쓰레기더미 속 한 송이 꽃을 위하여 TRAVELS


(스포일링 있습니다)

  누군가를 차별하기 위한, 혹은 차별의 대상이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서로가 대등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를 집밖에 묶어 두고 먹다 남은 음식을 먹이로 주는 것에 대해 혹자는 동물학대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개에 대한 인간의 차별이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등한 존재를 대등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다. 특정한 인종이나 계층, 무리에 대한 혐오-멸시-기피는 오해와 편견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을 유지한다. 혐오하고 멸시하고 기피하기에 오해와 편견이 더욱 더 커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론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특별한 계기나 번뜩이는 깨달음의 순간 같은 것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DISTRICT 9>은, 그러할 기회를 얻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비록 그 발단은 아무도 예기치 못 했고 의도하지도 않았던 사고이지만, 결과적으로 비커스는 그들을 이해했다. 꽤나 극적인 입장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 가족이고 친구이며 동족이었던 자들은 그를 백안시하고 욕하는 것으로 모자라 목숨을 빼앗으려 들고, 내심 깔보고 조소했던 '프론'은 이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동료이다. 인간과 외계인, 둘 모두이자 동시에 둘 중 어느 쪽도 아니게 된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종족'을 구분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자신을 죽이려드는 인간들에게 다소 우스운 발음의 욕설과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는다. 동족의 비극에 슬퍼하고 자식을 소중히 여기는 외계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홀로 도망치려던 걸음을 멈추고 크리스토퍼를 구하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그는 그때까지의 비커스 메르바보다 좀 더 나은 무언가가 되었다. 그것을 단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선택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떠나가는 우주선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비커스의 모습, 우울해보이면서도 어쩐지 미소처럼 느껴지는 그의 표정을 담담히 보여주는 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자 인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가운데 처음으로 희망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장면이다. 한 송이 꽃─인간들이 쌓아 놓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건진 금속 조각들로 만들어져 햇빛에 반짝거리는 그 꽃은 적어도 누군가가 절망 속에서 흘린 눈물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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