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 속 한 송이 꽃을 위하여 TRAVELS


(스포일링 있습니다)

  누군가를 차별하기 위한, 혹은 차별의 대상이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서로가 대등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를 집밖에 묶어 두고 먹다 남은 음식을 먹이로 주는 것에 대해 혹자는 동물학대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개에 대한 인간의 차별이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등한 존재를 대등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다. 특정한 인종이나 계층, 무리에 대한 혐오-멸시-기피는 오해와 편견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신을 유지한다. 혐오하고 멸시하고 기피하기에 오해와 편견이 더욱 더 커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론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특별한 계기나 번뜩이는 깨달음의 순간 같은 것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DISTRICT 9>은, 그러할 기회를 얻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비록 그 발단은 아무도 예기치 못 했고 의도하지도 않았던 사고이지만, 결과적으로 비커스는 그들을 이해했다. 꽤나 극적인 입장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 가족이고 친구이며 동족이었던 자들은 그를 백안시하고 욕하는 것으로 모자라 목숨을 빼앗으려 들고, 내심 깔보고 조소했던 '프론'은 이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동료이다. 인간과 외계인, 둘 모두이자 동시에 둘 중 어느 쪽도 아니게 된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종족'을 구분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자신을 죽이려드는 인간들에게 다소 우스운 발음의 욕설과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는다. 동족의 비극에 슬퍼하고 자식을 소중히 여기는 외계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홀로 도망치려던 걸음을 멈추고 크리스토퍼를 구하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그는 그때까지의 비커스 메르바보다 좀 더 나은 무언가가 되었다. 그것을 단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선택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떠나가는 우주선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비커스의 모습, 우울해보이면서도 어쩐지 미소처럼 느껴지는 그의 표정을 담담히 보여주는 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자 인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가운데 처음으로 희망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장면이다. 한 송이 꽃─인간들이 쌓아 놓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건진 금속 조각들로 만들어져 햇빛에 반짝거리는 그 꽃은 적어도 누군가가 절망 속에서 흘린 눈물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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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코님 2009/10/20 09:38 # 답글

    나도 이거 보고 싶은데
  • 달리는 바위 2009/10/20 11:29 #

    보고 싶으면 보면 됩니다
  • 나코님 2009/10/20 16:54 #

    롯데시네마 포인트로 공짜로 보게됐어요.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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