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HANNA TRAVELS

  

   어떤 의미에서 영화의 홍보란, 합법적인 사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속은 놈이 바보라는 거지요. 애초에 믿어선 안 되는 걸 믿어버렸으니 기대를 무참히 배신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셈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대표적인 예로는 <WATCHMEN>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원작 코믹스를 접하지 못 한 채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비긴즈> 같은 영웅활극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관객으로서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혹평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1차적인 잘못은 허풍 내지는 거짓말의 비중이 더 높은 홍보로 사람들을 현혹한 한 배급사에게 있기는 합니다만, 책임 자체는 본인 지갑에서 돈 나가는 일을 하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극장을 찾은 소비자-관객-봉에게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한나>를 감상한 뒤, 딱히 다른 누군가를 욕하거나 하지 못 하고 혼자서 끙끙거린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젠장.  단언하건데, <본> 시리즈나 <솔트>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보러 간 관객이라면 스탭 롤이 올라갈 무렵 정신적으로 피를 한 바가지 토할 것이 분명합니다. <힛걸킥애스>를 기대하고 보러 간 관객은 두 바가지 쯤 토할 지도 모르겠군요.    
   
   액션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주체가 하다못해 소년조차 아닌 소녀라는 부분에 주목하지 못 한 것이 관객으로서의 불찰이지요. <킥애스>에서 클로이 모레츠가 어린 소녀의 몸으로 제법 그럴 듯한 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날붙이나 총처럼 체격과 근력의 차이라는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무기을 사용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10대 소녀가 맨손 맨몸으로 어른과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는 영화의 막바지 마크 스트롱과의 1대 1 대결만 봐도 잘 알 수 있지요.

   물론 <한나>에는 그런 싸움에 합리성을 부여해 주는 숨은 설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설정은 어디까지나 설정일 뿐입니다. 덜 자란 소년도 아닌 소녀가 작은 체구나 민첩성이나 필살 고환 걷어차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성인 남성과 대등하게 치고 받는 장면은 어떤 식으로든 어색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그런 어색함은 앞뒤 팍팍 잘라먹는 과감한 편집과 알아보기 힘든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통해 가려지곤 하지요. 


   결국 이 영화는 액션영화의 탈을 쓰고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성장에 대한 영화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과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군요. 최종 보스의 위치에 서 있는 마리사 위글러라는 캐릭터가 아이를 가져 본 경험 없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독신(아마도) 여성이라는 점은 꽤나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액션 외의 부분들이 그리 큰 설득력이나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건데, 전체적으로 좀 애매하지요. 무릇 이야기의 형태를 띤 창작물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질문 중의 하나─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굳이 이런 식으로 해야 했던 이유는 뭔가요?'라는 한 마디가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목젖을 간질이는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이유는 그냥 대답해 줄 사람이 없어서일 뿐이죠. 극단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설정은 언제나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위험을 극복하려면 대중성으로든 작품성으로든 적어도 어느 한 쪽에서는 성난 소비자 내지는 스폰서의 비판을 피할 만할 필요 조건 이상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한나>의 경우에는 양쪽 모두 어정쩡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분위기도 그럴싸 하고 영상미도 괜찮은 편이지만…… 글쎄요.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은 불협화음에 가까웠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군요. 
  
한줄 요약 : 액션 영화 기대하고 보러가면 피 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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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qwe 2011/04/20 20:02 # 삭제 답글

    마지막즈음에 도대체 퍼펙트 솔져 양 유전자 관련 설정을 그렇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었는지.. 다른 설정은 설렁설렁 넘어갔으면서;
  • 달리는 바위 2011/04/20 20:13 #

    이제 와선 너무 뻔한 설정이라 그렇게 대놓고 떠드니 오히려 신선할 지경이었죠.
  • .. 2011/04/20 23:52 # 삭제 답글

    ..킬빌 1, 2 를 한 편으로 몰아넣은 느낌이랄까요..

    3부작까진 아니어도 연작 정도만 되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를 살릴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나갈 지 선택하는 건 감독의 몫이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 달리는 바위 2011/04/21 00:23 #

    저도 훨씬 재미있게 그릴 수 있는 소재를 완성이 덜 된 채로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좀 아쉽더군요.
  • 칼슈레이 2011/04/21 09:48 # 답글

    북미쪽에서도 그랬지만 상당히 취향타는 물건같군요 ^^;; 사자왕님을 비롯한 찬성측과 에드맨님과 충격님을 비롯한 반대측... 개인적으로는 찬성에 한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
  • 달리는 바위 2011/04/21 12:30 #

    낚시 수준의 홍보도 문제지만, 그 전에 '과연 액션을 기대하지 않고 감상했더라면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에도 선뜻 긍정적인 답변을 내기가 힘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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